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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shipers following God's will

10. 사마리아 여인

본문 : 요한복음 4:1–42 (NKSV)
구절 보기

1 요한보다 예수께서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신다는 소문이 바리새파 사람들의 귀에 들어간 것을 예수께서 아셨다.
2 –사실은, 예수께서 직접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이 준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셨다.
4 그렇게 하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실 수밖에 없었다.
5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셨다. 이 마을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며,
6 야곱의 우물이 거기에 있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로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7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가서, 그 자리에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생수를 구하신다는 말입니까?
12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그와 그 자녀들과 그 가축까지, 다 이 우물의 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15 그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16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17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옳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여자가 예수께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2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그 여자와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 “웬일이십니까?” 하거나, “어찌하여 이 여자와 말씀을 나누고 계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30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서, 예수께로 갔다.
31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께, “랍비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셨다.
33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가져다 드렸을까?” 하고 서로 말하였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
36 추수하는 사람은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어들인다. 그리하면 씨를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할 것이다.
37 그러므로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 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의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39 그 동네에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것은 그 여자가, 자기가 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맞히셨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40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시기를 청하므로, 예수께서는 이틀 동안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다.
42 그들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포인트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요한복음에 명시된 시각은 로마식 표기?

그러나 요한복음 4장에 명시된 시간 표현인 ”제 육시”(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 요한복음 4:6 개역한글)를 로마식 시간으로 단정 짓는 것은 본 사건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어려움이 있다. 오후 6시 정도면 유대력으로는 하루가 넘어가는 시간대이고, 해질녘으로 어둠이 찾아올 시간대여서 통상적으로 여행자들은 이 시간대가 오기 전에 하루를 묵을 숙소를 찾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시간이 되도록 걸으셨다면, 이것은 분명 사마리아 지역 방향으로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하셨다는 말이다. 또한, 이 때에 돈을 받고 빵을 파는 빵집들은 아침부터 낮 시간대까지만 운영했다. 저녁 전에 빵집들은 영업을 종료하고, 빵집 주인들도 자기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오후 6시에 요 4:8에 적힌 행동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

수가성의 위치와 예수님의 이동 거리에 대해서는 아래 URL들을 참고하자.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한 메시아는?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한 메시아는 정치적 구원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메시아는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를 회복시킬 자였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에 대한 관심을 예배에 대한 장소(진정한 예배의 장소는 그리심 산인가, 예루살렘 성전인가)에 놓고 있을 때, 그 관심을 진정한 예배는 그 예배에 누가 있는가로 결정되어진다로 옮겨 가신다. 메시아의 도래로 말미 암아, 이제 진정한 예배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가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 가운데 성자와 성령 하나님도 함께 하고 계신가로 인정받게 될 것 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복을 바라지만, 복의 원천을 놓치는 실수를 종종한다

요한복음 4:10 (NKSV)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4:18 (NKSV)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하였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으로서의 생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예수님의 말에 갈증 해소라는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우물에서 나는 샘물로서의 생수만 생각한다.


in this mountain VS in Jerusalem → in Spirit(성령 하나님) & in truth(성자 하나님)

요4:23은 개역한글판에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적혀 있었으나 본문에 대한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개역개정판에서 “영과 진리로”로 바꾸었다. 해당 구문의 헬라어 원문은 “엔 프뉴마 카이 알레데이아”로 ‘카이’는 (1) ‘~와/과(and)’, (2) ‘~, 곧(even, 앞 뒤 명사 동격)’ 이 두 가지 의미를 주로 갖는다. ‘엔’은 한글 성경은 ‘as’의 의미로 변역했는데, ‘in’의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인다.

요한복음 4:20 (NKRV)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in(on) this mountain VS in Jerusalem

요한복음 4:23 (NKRV)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in Spirit and truth

카이
헬라어 kai.는 문맥에 따라서 “동시에”(and), 곧(even)”~역시(also)”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우리가 연구하고자하는 구절들에서는 “~동시에” “곧”(even)으로 번역된다. 이 구절들은 롬15:6, 고후1:3, 11:31, 갈1:4, 엡5:20, 빌4:20, 살전1:3, 3:11절 등이며 여기서 하나님과 아버지는 서로 다른 두 분이 아니라 동일한 한 분이시며 “아버지”라는 단어는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분을 더욱 깊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벧후1:11절 2장20절 3장18절에 우리는 “주 곧 그리스도 예수(Lord and Saviour Jesus Christ)라는 구절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헬라어 원문에서는 같은 구문으로 나온다. 따라서 똑같은 문법법칙이 적용된다. 주와 구세주 그리스도는 동일한 분이시며 “구세주”라는 말은 “주”라고 설명된 분을 더욱 깊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헬라어에서 “주”라고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의 이름에만 사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70인 역 번역자(285-150BC)들은 이 단어를 존엄한 하나님의 칭호인 “여호와”를 번역할 때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로마 제국에서 신으로 예배 되었던 통치자 가이사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기독교는 가이사들의 제국주의에 대해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났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in the city of David a Savior Which is Christ the Lord)(눅2:11)라고 선포함으로 정면으로 도전했다. “주(Lord)”라는 단어는 이스라엘과 로마제국과 기독교에서 하나님 칭호로써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리하여 간단한 헬라어 문법의 법칙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하나님이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구절을 다시 살펴보자! 당시 헬라어가 국제 공용어였다. 로마가 국제 공용어인 헬라어를 고집하고 있었던 때였다. 따라서 헬라어 문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Lord)시며 구약의 영호와시며, 신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프뉴마 (헬라어)
바람, 호흡, 생명, 영, 성령

루아흐 (히브리어)
숨, 바람, 영
루아흐(명여)는 루아흐(j’Wr , 7306: 숨쉬다, 불다)에서 유래했으며, 그 기본개념은 ‘움직이는 공기’이며 ‘숨(호흡), 생기, 바람, 영’을 의미한다.

알레데이아 (헬라어)
진리
알레데이아는 사건의 진상을 의미한다. (a) 사법에서 여러가지 진술에 대항하여 지지될 수 있는 사건의 진상, (b) 역사에서 신화와 완전히 구별되는 실재적 사건, (c) 철학에서 절대적 의미의 참된 것 등을 의미한다(R. Bultmann). 그러므로 알레데이아는 일반적으로 거짓이나 거짓말에 반대되는 ‘진실’을 의미한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마르지 않는 물, 성령 충만

예레미야 2:13 (NKSV)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바벨론에게 패망한 유다의 잘못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과 본인에게 능력도 없으면서 자신의 지혜와 수고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요한복음 1:33 (NKSV)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게 하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βαπτίζων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baptizes in the Holy Spirit)
 세례를 나타내는 헬라어는 밥토(βάπτω)와 강조형인 밥티조(βαπτίζω)가 있다. 신약 성경 외의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βάπτω는 βάψω에서 유래된 말로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최초로 “담그다(dip)”는 의미로 나온다. 11) 헬라 비극에서는 “도살된”이란 의미로 쓰였으며, 70인경에서는 그 피를 “찍어”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소포클레스는 “독에 담그다”(dip in poison)로 쓰기도 한다. βάπτω는 주전 4,5 세기에 아이스킬로스에 의해 “물들다”로, 헬라 희극의 유폴리스(Eupolis)에 의해 “염색하다”는 의미로, 주전 3세기의 데오크리투스(Theocritus)에 의해 “그릇을 담가 물을 긷다”로, 주후 2세기에 아리아누스(Arrianus)에 의해 “세례 받다(baptize)” 로 쓰였으며, 주전 5세기에 비극작가 유리피데스(Euripides)에 의해 “배가 침몰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βαπτίζω는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Plato와 후대 저술에서 “침몰하다(to immerse)”의 의미로 나타난다.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기에서 “배를 침몰시키다(to sink the ship)”로, 수동태로는 “침몰 당하다”로 사용하고, “파선에 고통하다(to suffer shipwreck)” “물에 빠지다(to drown)” “멸망하다(to perish)”로 쓰기도 했다.  βαπτίζω가 신성한 배경에서 “목욕하다” “씻다”는 의미로 헬레니즘에서 가끔 발견되기도 하지만 아래로 내려가거나 멸망하거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이로 보건대 βάπτω와 βαπτίζω는 기독교 이후에 비로소 세례와 관련된 용어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에 물든다
성령에 영향 받는다
예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성령에 영향 받게 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이 찾아 오신다

요한복음 7:37–39 (NKSV)
37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다.

에베소서 1:17 (NKS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와 함꼐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참된 예배

하나님을 알아가는 예배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배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예배

10. 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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