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21:33–46 (NKSV), 누가복음 20:9–19 (NK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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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열매를 거두어들일 철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5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또 하나는 돌로 쳤다.
36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37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38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그들끼리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39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
40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4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43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채고,
46 그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무리들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무리가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10 포도를 거둘 때가 되어서,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 소출 가운데서 얼마를 소작료로 받아 오게 하려고, 종 하나를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1 주인은 다른 종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도 때리고, 모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2 그래서 주인이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냈더니, 그들은 이 종에게도 상처를 입혀서 내쫓았다.
13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말하였다. ‘어떻게 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겠다. 설마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14 그러나 농부들은 그를 보고서, 서로 의논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래서 유산이 우리 차지가 되게 하자.’
15 그리하여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바깥으로 내쫓아서 죽였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주인은 와서 그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 말하였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17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시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고 기록된 말은 무슨 뜻이냐?
18 누구든지 그 돌 위에 떨어지면, 그는 부스러질 것이요, 그 돌이 어느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 것이다.”
19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자기네들을 겨냥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 때에 예수께 손을 대어 잡으려고 하였으나,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포인트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 그리고 아들을 거부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한다.
이사야 5:1–7 (NKSV)
1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2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3 예루살렘 주민아, 유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4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6 내가 그 밭을 황무지로 만들겠다. 가지치기도 못하게 하고 북주기도 못하게 하여,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만 자라나게 하겠다. 내가 또한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7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첫째, 비유를 통한 예수의 가르침을 서술하는 누가의 이야기가 커다란 내러티브에 포함된 짧은 내러티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본 장면의 중요성이 있으며, 각 내러티브는 서로를 해석하고 서로에 의해 해석되는 관계를 이룬다. 본문에 전개되는 비유의 의미는 독자가 18장 1, 9절과 19장에 사용된 해석의 틀에 의해 의미가 제한되는 방식과는 동일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접 문맥과의 관계는 분명하고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비유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누가의 더 넓은 내러티브와 연결된다. (1)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내 사랑하는 아들”로 칭해지고, 이는 하나님이 예수를 직접 부른 호칭을 떠올린다 (13절; 3:22). (2) 소작인들이 아들을 죽이려고 계획한 것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14, 19절; 19:47), (3) “돌”의 이미지를 포함해서 심판을 의미하는 비슷한 모티프가 사용된다 (18절; 19:44). (4) 백성과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비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한다 (16b, 19절). 이런 연결은 독자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가? 독자들은 본문의 비유와 더 큰 내러티브를 서로 관련지어 이해함으로써 분리해서 이해할 때보다 훨씬 더 깊이 각각을 이해할 수 있다.20) 따라서 예수의 비유적 가르침은 내러티브를 앞으로 떠밀어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의 주제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1) 예수, “사랑하는 아들”은 배척당하고 죽는다 (13절). (2) 하나님이 보내신 전령들을 거부한 자들, 포도원의 소작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심판이 임한다 (16, 19절). (3) 지도자의 역할이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며, 이들은 이어지는 내러티브에서 예수와 사도들이다 (22:28–30; 참고, 행 1:1–11).
둘째, 비유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비유의 의미를 이사야 5장 1–7절과의 상호본문적 관계를 통해 도출한다. 이사야의 본문에서 포도원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점을 고려하면, 누가복음의 비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이야기의 축약본이며, 누가-행전의 내러티브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고, 소작인들을 선택하고, 소작인들이 책임성을 갖고 일하도록 하고, 소산을 모으도록 종들을 연이어 보낸다. 이 모든 내용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묘사하는 이야기의 요소들과 비슷하며, 이런 관계는 누가-행전의 내러티브에 이미 설명된 것이다. 누가는 포도원 주인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결정한 지점에서 이사야 본문을 사용한다. 사랑하는 아들과 관련된 내용은 누가의 내러티브 전체에 널리 스며들어 있는 하나님의 목적의 모티프와 비슷하며,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는 것으로 역사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신다. 또한 누가는 예수의 비유적 가르침을 미래와 연결한다. 이 가르침을 통해 권위가 심판받고 다른 이들에게 이전될 것을 선취적으로 선언한다.
조엘 그린, 누가복음, ed. 신상균, trans. 강대훈, NICNT 시리즈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884–885.
예수님의 비유가 이사야의 노래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상이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사야 5장에서는 포도원이 신 포도를 생산해 내는 반면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포도원이 풍성한 소출을 만들어 냈거나 농부들이 포도원 관리에 소홀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수익을 주인과 나누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포도원 경작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Marshall 1978: 726). 이러한 점은 이 비유의 초점이 ‘결과물’(포도원의 포도 혹은 수확)에 있지 않고 주인의 권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농부들이 해고당하고 축출된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불순종 때문이다. 둘째, 이사야 5장에서는 들포도를 생산해 낸 포도원에 대해 포도원 주인이 심판은 선포한다(사 5:5–6). 반면에 예수님은 심판이 농부들에게 임할 것과 그 포도원은 다른 농부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신다(눅 20:16). 이러한 점은 누가가 볼 때 예루살렘의 멸망(참조, 19:41–44)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는 농부들의 파멸이 포도원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Kimball 1994b: 158; Brawley 1995: 38–41; C. A. Evans 1990: 298; Green 1997: 705).
G. K. 빌텱. A. 카슨, “서 론”, in 누가 · 요한복음: 구약성경의 인용, 암시, 반영에 대한 탐구, ed. G. K. 빌와/과D. A. 카슨, trans. 우 성 훈와/과배 성 진, 초판., vol 2,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시리즈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2), 351–352.
포도원은 에덴동산처럼 하나님 나라의 법도가 실현되며 결실이 맺어지는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 서에서는 유다 백성들의 범죄로 인해 땅이 오염되어 땅이 파멸되는 정화의 과정을 거칠 것이 예언되었다면, 누가복음에서는 유다 백성들(특히 지도층)이 자기 뜻대로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인해 그 땅에서 취할 권리가 없어질 것이 예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자기가 바라는,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꿈꾸고 있었으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는 곳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되는 곳이다. 유다 지도층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렇게 예수님을 배척했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떠 한가? 그 곳은 하나님의 주인이신 곳인가, 나에게 풍성한 은혜만 주면 되는 곳인가?